획으로 쓰는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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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rt Marking Machine 1899 미국
이 장치로 한글이나 한자를 쓸 수도 있을까.
ⓒThe Office Museum



몸에 잘 맞는 옷 한글

노마 히데키의 '한글의 탄생'이라는 책은 한글이 우리말의 발음에 최적화되게 만들어진 흔적들을 몇 가지 소개한다. 예를 들어 양모음 음모음의 형태같은 것이 그렇다.

한글은 우리말 발음의 특징을 반영해..
우리말에는 '모락모락'이나 '무럭무럭'같이 모음조화로 그 느낌을 달리하는 의태어들이 많다.

'모럭모럭'이나 '무락무락'이라는 표현은 없는데, 그것은 상이한 모음이 반복해 사용되면 입의 움직임이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ㅏ와 ㅓ, ㅗ와 ㅜ가 인체공학적으로 정반대에 위치하는 발음이라는 것을 그 시대에 이해하여 나름의 발성의 구조체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놀랍고, 더 나아가 문자의 설계에 이를 반영하고자 하였으며, 이를 급기야 실행에 옮겨 반포까지 하는 그 과정은 보면 볼 수록 무언가 지금 세상에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는 신묘한 느낌을 받게한다.

한글은 어느 날 갑자기 생각난 반짝 아이디어가 아니라 우리말의 특징을 끊임없이 들여다 보고 깨닫고 숙성시킨 결과였을 것이다.

동국정운(東國正韻)서문
한글이 창제될 당시 작업에 관여했던 신숙주는 동국정운(東國正韻) 서문에서 말은 지역의 환경 > 사람의 기질과 풍습 > 호흡 > 발성의 순으로 각각 영향을 주어 결정되고, 자연환경이 중국과 다른 우리는 발성 역시 중국과 달라 우리 발음을 정확히 적는 문자가 필요하다고 설명하였다.

이 한글의 디자인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유는, 우리가 쓰고 있는 이 한글이나 더 나아가 특정 언어권의 문자는 그 말의 특징에 따라서 만들어지거나 발전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한번 짚고 넘어가기 위해서이다.

이제 한번 생각해보자.
글은 말에 근거를 두고 만들어졌다. 그런데 그 글을 입력하는 장치들은 정말 글에 근거를 두고 만들어져 있는 것일까. 혹시, 문자의 구조가 서로 다르면 그를 입력하는 방법도 서로 달라져야만 하는 것은 아닐까.


어느 문자사회의 선택 QWERTY

문자를 입력해야 하는 상황은..
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모두가 쓰고 있는 이 PC키보드라는 물건은 다들 짐작하다시피 타이프라이터, 즉 타자기로부터 그 형태가 유래되었다. 그리고 그 타자기라는 물건은 지금으로부터 120여년 전인 1880년대 후반 미국 뉴욕 인근의 한 마을에서 개발된 것이다.

1880년대의 미국은 남북전쟁이 끝나고 경제가 활기를 띄며 발전하던 시기였는데 기술과 경제의 발전으로 건물들도 점점 높아져가고 철도도 여기저기 놓이고 수많은 진기한 기계들이 쏟아져나오던, 소위 '20세기'를 꽃 피울 준비를 하고있던 때였다. 이 시기 이후로 수 십년간 미국에서는 전구, 전화기, 비행기, 영화, 라디오, TV등 지금도 쓰고 있는 물건들이 줄줄이 발명된다.

타이프라이터도 이 분위기속에서 태어났다. 이 시기까지 미국과 유럽에서 '글쓰는 장치'로 출원된 특허만 2천 종이 넘는다.

19세기 말에 개발된 다양한 형태의 "글쓰는 장치"들
① Rasmus Malling-Hansen의 타자기 Denmark, 1878   ② Dart Marking Machine 1899   ③ Ingersoll Typewriter, 1891   ④ Mignon Typewriter Model 2   ⑤ Odell Single Case and Double Case Typewriters 1890  
ⓒWikipedia ⓒThe Office Museum

크리스토퍼 숄스 Christopher
Shorles   ⓒWikipedia
그 수많은 '글쓰는 장치'들 중에서 오로지 단 하나, 우리에겐 이름도 생소한 크리스토퍼 숄스(Christopher Sholes)라는 사람이 만든 QWERTY키보드만이 백년 넘게 살아남아 훗날 이 세상을 지배하게 되는데, 이 QWERTY자판은 대체 어떤 비결이 있었길래 수 천대 일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급기야는 지구 건너편의 영어라고는 전혀 몰랐던 한국인의 책상위에까지 올라와 있게 된걸까.

결론부터 먼저 이야기하면, 그것은 당시 급성장하던 미국의 기업들의 시간 효율성 추구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QWERTY자판은 타 입력장치와는 다르게 숙련을 통해서 영문을 빠르게 치는 것에 촛점을 맞추어 설계한 것인데 그것이 전문 타이피스트들의 선택을 받게 된 것이다.

QWERTY자판이 등장하기 이전 1880년대는 아직 이 글쓰는 장치들로 인쇄한 것 처럼 글씨를 쓸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재미있게 여기던 때였다. 그러다 보니 글쓰는 장치들은 영문 알파벳을 A에서 Z까지 순서대로 나열해 놓은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좀 느리더라도 한 눈에 작동법을 이해하기 쉬운 쪽이 초기에는 사람들에게 어필했을 것이다.

숙련이 필요한 쿼티 자판이 성공한 이유는…

그러던 와중에 1886년 크리스토퍼 숄스가 알파벳이 다소 난해하게 나열된 QWERTY자판이라는 것을 세상에 내 놓는다.

특허출원시 제출했던 크리스토퍼 숄스의 QWERTY자판
도면. 지금의 자판배열과 똑같다. 1886
ⓒThe Office Museum
당시 갈수록 규모가 커지던 미국의 기업들은 업무를 세분화하고 효율을 높이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문서작성에 있어서도 전문 타이피스트가 등장하는 배경이 된다. 한번 고생해서 몸에 익히고 나면 당시의 어떤 장치보다 빠르게 글을 쓸 수 있었던 이 QWERTY자판은 그 생산성에서 프로 타이피스트들의 인정을 받았다. 결국 이 타이프라이터로 깔끔한 문서를 만드는 것이 비즈니스 관례처럼 되어버린다.

1895년 존슨앤존슨의 타이피스트
QWERTY방식의 레밍턴 타자기를
앞에 두고 있다.
ⓒwww.kilmerhouse.com
그렇게 사회적인 베타테스트 기간을 거치며 미국인들의 삶 속으로 퍼져나간 이 QWERTY자판은 (마치 자전거처럼 몸으로 익힌 기술은 쉽게 몸에서 사라지지 않는 이유로) 그 후로도 크게 막강한 경쟁자를 만나지 않고 자연스레 영자 문화권의 표준이 되어갔다. 마치 대다수가 쓰던 윈도우즈가 OS시장을 장악했던 것과도 비슷하다.

IT제품의 많은 유저경험을 바꾸어 놓은 스티브 잡스도 이 QWERTY자판 만은 건드리지 못했는데, 이는 사회적 생태환경이 수 십년간 함께 결정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QWERTY자판의 적자생존을 초래한 사회적 생태환경이란 '미국 기업들의 생산성 추구'였다는 점이다.

각국이 이 자판을 쓰고 있는 이유는…

1980년대 IBM의 기업용 PC의 광고
ⓒThe Office Museum
크리스토퍼 숄스는 의도하지 않았을 것이고 상상도 못했을 테지만, 그럼에도 이로부터 정확히 백 년이 지난 1980년대 IBM PC가 전세계의 사무실에 보급되면서 QWERTY자판은 아무 저항없이 세계인의 책상위로 올라오게 된다.

각국이 자연스럽게 이 QWERTY형태의 자판을 받아들이게 이유는 첫째로 PC를 움직이는 프로그래밍 언어가 영문기반이었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론, 각 문자문화권이 스스로 문자입력방식의 적자생존의 과정을 거쳐 자신의 문자에 최적화된 방식을 확립시키기에는 디지털시대가 너무 급속하게 도래했기 때문이다.

한글창제 당시의 갈등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 문자라는 것은 패러다임이기 때문에 그 방식이 맞건 틀리건 일단 한번 달리기 시작한 열차는 그가 세종대왕이든 스티브 잡스든 멈추기가 힘들다. 문자사회의 승패는 이미 백 년전에 이렇게 일찍이 마무리 된 셈이다.

다른 많은 사회적문제도 마찬가지이지만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되는데, 로마자와 구조적으로 극적인 대비를 이루는 한자의 기계화 과정을 보면, 서로 다른 두 문자가 하나의 입력 방식을 공유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불합리한 일인지 알게 된다.

한자와 로마자는 이름이 '문자'라는 것 외에는 어느 하나의 공통점도 없는, 신기할 정도로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정반대인 문자체계다.



하나도 닮지 않은 한자와 로마자

첫째, 로마자는 자소문자이고 한자는 조합문자이다. 즉 로마자의 한 단어가 한자의 한 글자에 해당한다. 로마자는 표음문자이고 한자는 표의문자이다. 따라서 로마자는 모든 글자를 일정한 밀도로 정리하며 발전할 수 있었지만 한자는 획의 밀도를 일관성있게 만드는데에 한계가 있었다.

둘째, 로마자는 가로로 쓰고 한자는 세로로 쓴다. 셋째, 로마자는 왼쪽부터 쓰고 한자는 오른쪽부터 쓴다.

넷째, 로마자는 펜으로 쓰고 한자는 붓으로 쓴다.

마지막으로 로마자는 26자이고 한자는 그 1000배가 넘는 3만여자다. 한자는 수 천년간 이름을 알수 없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한 글자씩 추가가 되기도 하고, 그때 그때 필요한 글자를 새로 조합하여 쓰기도 했기 때문에 실제로 몇 자의 한자가 있는지 정확히 파악조차도 하기 힘든 문자체계이다.

삼만자나 되는 한자를 가진 중국은…

26자를 가지고 옆으로 죽 늘어놓기만 하면 글이 되는 로마자, 한 글자에 수 십개의 획을 가지기도 하는 총 3만자가 넘는 한자를 어떻게 동일한 형태의 그릇에 담을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한 일일까.

만약에 한자를 치기 위한 타자기를 만들었다면 어떤 형태가 되어야 했을까. 아니, 그 전에 3만자나 되는 한자를 가진 중국은 타자기를 만들 수나 있었을까.. 혹시 만리장성 쌓던 실력으로 키가 3만개 정도있는 타자기라도 만들었던 것일까.

불행히도 그렇다.

린유탕(林語堂:임어당)이 시도했던 밍콰이(明快:명쾌) 타자기를 제외하면 실제로 그런 분위기였다고 볼 수 있다.

슈안게 중문타자기 ⓒWikipedia
얼핏보면 인쇄기처럼 보이는 이 중국의 일반적인 타자기는 넓은 활판에 약 2천여자의 활자를 꼽아놓고 그 중에서 자기가 원하는 글자를 하나씩 찾아서 뽑아내어 치는 방식이다. 상상할 수 있듯이 타이핑속도가 매우 느려서 숙련가도 분당 20~30여타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활판에 없는 글자는 옆의 보관함에서 찾아 활판에 집어넣고 다시 타이핑을 해야 하니 속도는 더 느렸을 것이다.

슈안게 중문타자기의 작동모습 ⓒHraesvlgr / Youtube

1940년대 미국에 거주하며 영문타자기를 사용하던 중국의 문호 린유탕(임어당,林語堂)은 한자타자기의 비효율을 해결하기 위해 밍콰이(明快:명쾌)타자기라는 키보드형 타자기를 개발하게 된다.

린유탕(임어당,林語堂) ⓒWikipedia
밍콰이 타자기는 총 72개의 키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중 한자의 구성요소들을 분해하여 36개의 상단키와 28개의 하단키에 배치한 뒤 그 상하의 키 중에서 하나 씩을 동시에 누르면 뷰파인더에 조합된 글자들이 나타나는 식이다. 뷰파인더에 나타난 후보 글자들은 맨 아래의 숫자키를 눌러 선택하면 최종적으로 한 글자가 종이에 찍힌다. 예를 들어, "易"자를 치고 싶을때 상단 36키중 "日"키와 하단 28키 중 "而"키를 동시에 누르면 "易", "陽", "場"등의 글자가 뷰파인더에 후보로 등장하고 이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식이었다.



타자기처럼 생긴 최초의 한자타자기인 린유탕(林
語堂)의 밍콰이(明快) 타자기를 소개한 Modern
Mechanix지(Popular Science의 전신).1947
ⓒModern Mechanix
이 밍콰이 타자기로 칠 수 있는 완성형 한자의 수는 576개, 이를 조합하여 이론적으로 90,000개의 한자를 치는 것이 가능했다고 한다. 아마도 한자의 여러 부수를 머리속으로 분해한 후 그것에 해당하는 복수의 요소를 키보드에서 찾아 동시에 누르고 또 후보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행위는, 한글이나 영문을 타이핑하는 것보다 훨씬 더 긴 시간과 많은 프로세스를 요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세로쓰기가 기본인 한자와 달리 가로쓰기인 영문을 타이핑하기 위해서는 작성중에 종이를 90도 틀어서 다시 끼우는 과정이 필요했다고 한다.

당시는 아직 전자산업이 지금처럼 발전했던 시기가 아니어서 이런 복잡한 원리를 모두 기계적으로 해결해야만 했는데, 쉽게 상상할 수 있듯이 이는 거의 실현불가능한 매우 어려운 도전이었을 것이다. 린유탕은 이 타자기를 상용화하기 위해서 당시 미국 최대의 타자기 회사중 하나였던 레밍턴사(E. Remington and Sons)의 경영진에게 이 기계를 시연한 적이 있는데, 불행히도 그 자리에서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다음날 이를 수정해서 다시 보여주려고 했지만 이미 레밍턴의 마음은 떠난 뒤였다.

이 후로 린유탕은 한자 타자기의 특허를 미국의 중소타자기 업체에 넘기고 타자기의 개발을 그만둔다. 그리고 그 타자기 업체도 결국은 그 기계를 제대로 만드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어떤 문자환경에선 ..
1940년대, 한글타자기의 아버지로 불리는 공병우는 자신이 개발한 한글 타자기를 미국 언더우드사와 상용화하기 위해 뉴욕을 방문했다가 린유탕을 만나게 된다.

그는 그 자리에서 문자의 구조에 따라서 두 개발의 성패가 갈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서로 깨달았을 것이다.

린유탕의 이 실패는 인간과 말과 문자와 기계가 서로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문학이며, 문자가 다르면 이를 생성하는 기계의 구조와 인터페이스도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함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가 아닐까.

중국과 한자전용을 하는 일본은 QWERTY자판을 사용하는 한 이 문제를 깨끗하게 해결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20세기 중반부를 넘기면서 전자적인 솔루션인 워드프로세서가 등장했고, PC시대가 되면서 CPU가 복잡한 연산을 수월하게 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나마 큰 위안이다. 그럼에도 중국과 일본은 현재 자국어를 PC로 입력하기 위해서 로마자의 발음을 차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로마자로 arigatou라고 치면 컴퓨터가 스스로 연산해서 ありがとう라고 뿌려주는 식이다. 물론 자국어를 바로 입력하는 방식도 몇 종씩 혼용하고 있지만 속도나 효율성을 이유로 양국의 대부분의 유저들은 이 『병음변환방식』을 사용한다.

특정 문자환경에서 수 백대 일의 경쟁율을 뚫고 천하를 통일한 방식도 다른 문자환경에서는 몸에 잘 맞지 않는 옷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한편, 최근에 읽게된 오츠다 타츠루 교수의 [일본변경론]의 한 챕터에서 문자와 그의 사회적 영향에 대해 한층 깊은 깊이의 화두를 접하게 되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향후 게재할 글에서 더 깊이 다룰 예정이다.



한글은 로마자와 닮았을까

다시 한글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럼 한글의 기계화 디지털화는 평탄했을까.

중국의 한자에 비하면 이 십여개의 자소를 가진 표음문자인 한글의 경우 매우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한글이 그다지 평탄한 역사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현재의 이 모습은 최선의 형태라기 보다는 그럭 저럭 옆집보다는 좀 나은 형태인 것이다. 옆집아이는 옷이 몸에 들어가지조차 않는데, 우리에겐 품이 크고 팔은 좀 길지만 그래도 몸에 들어는 가니까 이것도 행운이라면 행운이다.

중국의 한자가 약 3만자, 일본의 히라가나가 46자인데 반해 우리 한글은 기본 요소가 24자밖에 되지 않게 때문에 26자의 QWERTY자판에 모든 자소가 들어가고도 남는다. 심지어 획으로 쓰는 글씨처럼 7개로까지도 분해할 수 있으니 더 가혹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영문 대문자를 입력하는데에 사용하는 Shift키까지 활용하면 한글의 쌍자음, 복모음 등도 체계적으로 구현할 수 있으니 나름 그럴듯 해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한글 기계화에 있어서 행운은 여기까지였다. 영문은 자소를 옆으로 평행하게 죽 늘어치면 그만이지만, 우리 한글은 초,중,종성이 가로 세로로 다양하게 조합돠는 조합문자가 아닌가.

영문타이핑 방식을 그대로 응용한 …

최초의 한글타자기인 이원익의 타자기로 작성한 문장
ⓒ네이버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공병우박사가 세벌식 한글타자기를 만들기 수 십년 전인 1914년 이미 미국에 살던 교포였던 이원익이 한글타자기 개발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이원익은 단지 영문타자기의 자소 부품을 한글 자소로 바꿔서 한글타자기를 만들고자 했었는데, 때문에 영문에는 없는 한글의 받침을 구현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결국 궁여지책으로 글씨를 90도 옆으로 눕혀 타이핑하는 방식을 고안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받침문제는 해결이 되었지만 글씨를 옆으로 눕힌 상태에서 타이핑 해야하며, 결과적으로 세로쓰기 밖에 할 수 없는 좀 이상한 타자기가 되어버리고 만다. 이 시도는 최초로 한글타자기를 만들고자 했던 시도임과 동시에, 영문타자기라는 옷과 한글이라는 몸이 잘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은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역시 재미교포였던 김준성 역시 1920년대에 영문타자기를 베이스로 한글타자기 개발을 시도하게 되는데, 이번에도 '받침'이라는 두 문자의 근본적인 차이을 기술적으로 해결해 내지 못하고 받침을 옆으로 옮겨서 치는 소위 "한글 풀어쓰기 방식"의 타자기가 되어버린다.

이 두 발명은 영자문화권에서 경쟁을 거쳐 살아남은 영문 타자기를 이와는 다른 구조인 한글에 단순 적용하려고 했던 사례인데, 물론 지금에 와서야 할 수 있는 말이지만, 그 실패가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결국 이 두가지 한글 타자방식은 문자 기계화에 대한 의미심장한 교훈만을 남긴채 역사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이렇게 미국의 표준과 불화를 겪으며 30여년을 또 보내고 나서야 한글과 영문의 구조적 차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한 사람이 나타나는데 이가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안과의사 공병우박사다.

공병우 ⓒ네이버
공병우는 자신의 병원에 환자로 방문했던 한글학자 이극로선생의 영향으로 한글의 과학성에 눈을 떴고, 일본의사들이 사용하던 영문타자기를 보고는 한글타자기의 개발에 도전했다고 한다. 이를 위해 기계전문가를 고용하고, 생업인 병원운영을 등한시 한 채 몇 달간 시행착오와 좌절을 겪은 끝에 드디어 한글에만 있는 받침, 복모음, 쌍모음, 쌍자음등의 한글 특유의 과제를 모두 해결하고 게다가 속도까지 빠른 일명 "쌍초점"방식의 한글 타자기를 만들어낸다. 영문과 달리 자음과 모음이 명확히 분리되어 있는 한글은 자음과 모음을 계속 번갈아가며 타이핑을 하게 되는데, 빠른속도로 자음과 모음을 연달아 칠때 자소막대기가 서로 맞붙어버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두 막대의 위치에 약간의 차이를 두어 설계한 것이 쌍초점 방식이다.

이는 자음과 모음이 불규칙하게 섞여 나오는 영문단어에서는 적용할 수 없는 것인데, 우리글을 제대로 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영문타자기를 능가하는 퍼포먼스를 내게 되는 결정적인 요인이기도 하다. 사족이지만, 한국전쟁의 휴전 회담때 각국 언어의 타자기가 회담장에서 회의록을 작성했는데, 어떤 언어보다도 공병우의 한글타자기가 가장 빨리 회의록을 작성하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일화가 있다.

한편 한글에만 있는 '받침'이 초성 중성과는 그 높이값이 다른 점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 공병우는 받침용 자음을 별도로 한벌을 만들어 배치하게 되는데 바로 세벌식 한글 자판이다. 지금 우리가 PC에서 기본으로 사용하는 두벌식 자판과 달리 이 세벌식 자판은 숫자판의 영역까지 전부 한글자소로 채워져있고, 초성과 종성의 자음이 각기 다른 키에 할당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세벌식의 우수성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논란이 많은데, 최소한 기계적인 한글타이핑 솔루션으로서는 매우 훌륭하고 필연적인 방식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스마트폰의 세벌식 자판. 좌우로 자음이 중복되어 놓여있는데 우측이 초성, 좌측이 종성이다.
ⓒ네이버 블로그 bbaek
세벌식 자판은 80년대 PC시대를 위한 정부의 표준자판 선정과정에서 외면받게 되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론 더 이상 기계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초성과 종성을 두 벌로 만들 필요가 없어진 것도 있을테고, 기왕이면 영문 알파벳이 들어가는 3열에만 한글자소를 채워넣어 숫자키 등 주변키들을 고스란히 사용하고자 했던 목적도 있지 않을까 싶다.
미국 언더우드사에서 제작한 공병우의 세벌식타자기
ⓒ네이버


어쨌든, 한글타자기 역사상 가장 효율이 높았던 세벌식타자기를 표준화하기 위해 공병우는 이 후로도 끝없이 노력했지만, 결국 죽는 날까지 세벌식 자판이 국가의 표준자판이 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는다.

우리나라가 문자에 있어서만큼은 운이 좋은 것은 맞다. 최소한 중국이나 일본처럼 나이드신 분들이 한글을 타이핑하기 위해 영문도 함께 배워야 하거나,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영어 알파벳부터 가르쳐야 하는 상황은 아니니 말이다. 그럼에도 위의 이원익, 김준성의 경우처럼 영문타자기를 기반으로 한글타자기를 개발하다 한계에 부딪히고, 공병우처럼 영문타자기와는 또 다른 기계구조를 고안해야만 했다는 점을 보아도, 한글 역시 자소의 갯수만 비슷할 뿐 본질은 영문과 다른 것이다.

어떤 문자환경에선 ..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이 QWERTY자판을 멍청하다거나 사대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세계가 이 자판을 쓰고 있는 것이 누군가의 음모이거나 잘못 때문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 QWERTY자판이 가진 나름의 장점이라면, 열 손가락을 모두 써서 입력하기 때문에 학습에는 시간이 걸리지만 손놀림의 최대한의 퍼포먼스를 추구하는 형태라는 점, 그리고 열개의 손가락을 위 아래로 움직여 자연스럽게 닿을 수 있는 거리를 고려해 3열로 배치한 점, 팔의 관절의 움직임을 고려해 3열이 비스듬하게 배열되어 있다는 점 등인데, QWERTY자판이 나름 완성도와 보편성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나는 수 년간 컴퓨터를 사용하면서도 아직도 독수리 타법으로 타이핑을 하는 사람들을 수 없이 봐왔고, 마치 우리말에 대해서 한글이 그랬듯이 한글에 대해서도 무언가 필연적이고 더 어울리는 방식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만약에 디지털 혁명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났고, 우리가 세계에서 시장이 가장 큰 나라여서 다른 나라들의 문자를 크게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입장이었다면, 그 상황에서 우리가 백지상태에서 한글을 입력하는 어떤 형태나 구조를 만들었다면 그 모습이 지금의 QWERTY자판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 한글이든 한자이든 어떤 문자이든 간에, 그 문자가 서로 다를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신숙주가 이미 500년전에 잘 설명하였다. 신숙주의 논리의 연장에서 생각하면 그 문자를 쓰는 도구 역시 서로 달라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만약 린유탕이나 공병우가 지금 시대에 태어났다면, 즉 연산을 컴퓨터가 대신 해 줄 수 있으므로 복잡한 알고리즘까지도 구현이 가능해진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아마 기계적인 한계를 뛰어넘어 조금 더 자신의 문자에 최적화된 구조를 만들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방식이 무엇이 되었든, 스틱이든, 터치스크린이든, 제스춰이든, 입력 단위가 획 단위가 되든, 자소단위가 되든, 단어단위가 되든… 아마도 백 년정도 후 어느 날엔가는 한국사람들은 한글에 아주 잘 맞는 어떤 방식으로, 중국사람들은 한자에 아주 잘 맞는 어떤 방식으로 글씨를 쓰고 있지 않을까?



서기 414년의 상상


광개토대왕릉비, 만주 길림성

서기 414년의 어느 날, 만주 길림성의 한 들판에서 신하들은 선왕인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리는 비문을 거대한 돌에 새기고 있었다. 그들은 당시 주위 대부분의 나라가 그랬듯이 한자로 비문을 세기고 있었는데, 그것이 우리 말의 표현을 완벽하게 잘 담아내지 못하여 부분 부분에 이두문자를 사용하게 된다. 향찰 구결등과 함께 한자의 음을 빌어 우리말 단어나 조사를 적고, 우리말의 어순대로 한자를 써나가는 방식. 이두문자(吏讀文字)는 당시 중국과 말이 다른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등에서 두루 쓰이던 나름의 우리말 표기 방식이었다.

각국이 이 자판을 쓰고 있는 이유는…

당시만 해도 아직 이두문자가 체계화되어 있지 않았던 터라 이런 저런 고심을 해가며 글을 새기던 그들은 아마도 그로부터 오 백여년이 흐른 후에 이 이두문자를 신라의 설총이 쓰기 좋게 체계화하리라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또 오백여년이 지나면, 이번엔 이 나라의 왕이 직접 우리말을 완벽하게 표기하는 한글이란 표음문자를 만들어 반포하리라는 것도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또 오백여년이 지나, 그들이 글을 빌어 쓰고 있던 중국의 국민들이 한자를 쓰기 위해 로마자를 빌어 영문자판을 두드리고 있으리라는 것, 또 그 중국으로부터 글을 빌어 우리말을 새기던 자신들의 후손은 오히려 한글로 우리말을 바로 입력하고 있으리라는 것 역시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 이후에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지금의 누군가가 감히 한번 상상해 볼 수 있을까.





참조

조선왕조실록 - 신숙주의 동국정운(1447년 9월 29일)
조선왕조실록 - 최만리의 반대상소와 세종과 최만리의 논쟁(1444년 2월 20일)
한글의 탄생(노마 히데키, 돌베개)
세종대왕과 집현전(손보기, 세종대왕 기념사업회)
공병우 자서전(공병우, 대원사)
공병우, 한글 기계화의 아버지(송현, 작은 씨앗)
총균쇠(제레드 다이아몬드, 문학사상)
네이버 캐스트 - 공병우(네이버)
Early Office Museum
Popular Science
100 Inventions That Shaped World History(Bill Yenne)
The first typewriter(Darryl Rehr)
Idle Idols: Lin Yutang(The Idler)
Wikipedia(Christopher Latham Sholes, Lin Yutang, Typewriter, Japanese Typewriter, Chinese Typewriter)




iF Communication Design Award 2012 Wi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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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 Welt
iF Communication Design Award 2012 Wi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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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독일에 갔을때에 쿠텐베르크의 인쇄기가 있다는 도이치 뮤지엄에 잠시 들렀습니다.
2012년 3월